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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 이야기] 한국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

지난 칼럼에서 한국에 회사를 설립하는 것에 대해 다루었다. 이처럼 한국에 회사를 신설하는 방법으로 한국 비즈니스에 진출하는 것 이외에, 또 하나의 방법은 한국에 있는 기존 회사를 통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국 기존 회사와 비즈니스계약을 체결하거나 한국 기존 회사와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M&A(Mergers & Acquisitions)를 하는 방법으로 한국 비즈니스를 할 수도 있다.     기존에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해본 경험 없이 한국에 새로 회사를 설립한다면, 모든 것을 새롭게 개척해야 할 것이다. 새롭게 개척한다는 것은 그 열매를 모두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혹은 잘 알지 못하는 길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실패의 위험도 크다. 반대로, 한국 기존 회사를 통한다면 그 기존 회사의 인적·물적 시스템을 활용하여 바로 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즉, 한국 비즈니스 진출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험을 최대한 제거하고 안정적이고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한국 기존 회사를 통하는 방법 중 (광의의) M&A 방안은 위에서 말한 합작투자회사를 만드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유형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인수합병’이라 불리는 M&A의 유형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인수하거나 합병하는지에 따라 주식매매(기존 주주로부터 회사주식을 인수), 신주인수(회사가 발행하는 회사주식을 회사로부터 인수), 영업·자산양수도(회사로부터 기존 영업·자산을 인수) 및 합병(회사와 회사가 하나로 합병)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M&A 유형을 결정하고 구체적인 거래구조를 설립할 때는 (1)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2)가장 적은 돈(비용과 세금)을 내면서 (3)거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형과 구조를 검토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상 이런 과정이 없이 M&A를 시작했다가 다시 돌이키는 것은 너무 큰 비용과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반드시 한미 양국의 법률·세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M&A 유형을 결정하고 거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편, M&A 비용과 그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는 관점에서 중요한 또 한가지는 M&A 거래 자체뿐만 아니라 M&A 이후의 운영에 대해서도 그 위험을 사전에 발견하고 대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M&A를 성공하게 되면 사업을 확장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고,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너지를 만들 수 있지만, 만약 M&A에 따른 위험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한 경우 M&A를 하지 않은 것보다도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발견하고 대비하기 위하여 법률·세무 실사(Due Diligence)를 하고 그에 따른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거나 가격에 반영하거나 향후 현실화되었을 때의 해결방법을 미리 정해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기존 회사와 M&A를 할 때 특히 유의할 점은 외국인투자 관련 신고 업무와 그에 따른 한국 특유의 규제를 준수하는 것이다. 외국인투자 관련 신고를 위한 서류준비가 간단하지 않고 그 소요시간도 적지 않으므로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어 전체 일정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외국인투자로 인해 준수해야 할 특별한 한국의 규제사항을 사전에 확인하고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의:(424)218-6562  이진희 K-Law Consulting 한국 변호사한국법 이야기 한국 진출 한국 진출 한국 비즈니스 한국 특유

2024-02-13

[김형석의 100년 산책] 14살 때 죽음 앞두고 올린 기도, 평생 지킨 '기도하는삶'

나의 정신적 불행은 일제강점기, 12살부터 시작되었다. 고향의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 다녔다. 부친이 주변 학교 중에서 칠골의 창덕소학교가 가깝고 좋겠다고 생각해 편입시험을 보러 갔다. 부친을 따라 교무실로 들어갔는데, 5~6학년 담임이었던 윤태영 선생이 일본어를 전혀 배우지 못해 안 되겠다고 거절했다. 그때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교장 심 목사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애가 똑똑해 보이니까 붙여주라”고 했다. 그때부터 해방까지 13년 동안, 우리글과 일본어를 함께 배우며 살았다. 솔직히 생활은 우리말로 했지만 읽고 쓰는 데선 일본어 비중이 커졌다. 식민지 민족의 슬픈 운명이었다.   그런 과거 때문에 지금도 한글 문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30대 중반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저술에 자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일찍부터 교회에 나갔고 기독교 학교에 다녔다. 내 정신과 사상의 기반이 당초 동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서양철학을 전공하여서 동양 및 한국 전통과는 조우할 기회가 적었다. 내 사상의 그릇에 동서양이란 대립하는 정신을 함께 담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자란 세대들의 불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세대들의 역사적 불운이었다. 서양 학문과 사상, 특히 철학을 전공한 학자나 교수들에게 주어진 공통된 숙명이기도 했다. 문자로 표출되지 않는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요나 가곡을 제외하고는 한국 전통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여유가 없었다. 대학강의를 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신과 전통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괴심마저 들었다. 한국적인 것이 빈약한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갖게 된 분야가 회화를 중심으로 한 한국미술이었다. 사실 회화에 대한 예술의식 비슷한 것은 대학 시절에 키울 수 있었다. 대학생 때 도쿄 우에노 공원에 있는 도쿄 도립미술관 지하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술관이어서 일본 회화는 물론 서양화가들의 전시회도 연중 열렸다. 식당 위층이 전시장이어서 일본화 대가들을 자주 감상하게 되었다. 그림 미술의 예술성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이후 서울에서 한국 화가들의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중국의 전통 화풍에서 벗어난 한국적인 그림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좀 더 한국적인 것을 찾아보다가 문인화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선비들이 학문이나 시를 쓰다가 취미 삼아 그린 그림들이다. 궁중화가나 전문화가 작품보다 한국인다운 느낌이 더 물씬하였다. 그리고 민화(民畵)를 접했다. 이것이 한국 특유의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있는 작가도 아니고 목적이 뚜렷한 그림도 아닌 생활의 필요나 재미에서 탄생한 그림들이다. 그 수는 많지 않았으나 전국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개성이 뚜렷하고, 창작열 뜨거운 작품들이다.   몇십 년 국전을 관람하면서 동양화나 서양화의 주류를 벗어난 한국적 회화가 태어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국 회화의 장래가 희망적으로 보였다. 그림 감상의 기쁨이 배가되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서울 골동품상 흔하게 볼 수 있는 옛날 도자기들도 우연히 살피게 되었다. 고려시대 작품들은 고급스럽고 예술성이 풍부하나 중국적인 전통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우아한 색채와 상감이 중국 것을 능가하였지만 말이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주변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것’의 특성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종류도 다양해졌다. 그 본령을 이루는 것은 당연히 백자이다. 달항아리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일상용품 백자가 빚어졌다. 조선 초기의 다양한 백자는 우리 조상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예술성을 품고 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도자기들을 찾아다니면서 안복(眼福)을 많이 누렸다. 비로소 한국적인 생명력이 넘치는 예술성을 느끼는 듯했다. 이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도 도자기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 경험을 돌아볼 때 가장 많은 종류의 도자기를 소장한 곳은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박물관이다. 동서양 작품이 두루 모여 있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 가도 한국적인 것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정감 넘치는 도자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조선 후기의 작품들은 생활미와 예술미, 그 둘의 조화미가 빼어나다.   생활미와 예술미 두루 갖춘 백자   가격도 부담이 적어 한두 점씩 사 모은 것이 이제 몇백점에 이르게 되었다. 인연 있는 중고등학교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상당수 작품을 보내기도 하고, 나머지는 강원도 양구 근현대사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내 기념관인 ‘철학의 집’에 여러 점을 비치하기도 했다. 양구 박물관의 내 도자기 방에는 두 점의 문인화, 조지훈이 도자기를 예찬한 시도 걸려 있다. 규모는 작지만 지방박물관에서는 보기 드문 전시실이 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다. 그 개념은 과장된 표현이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국가와 민족은 인간적인 것을 간직하면서 세계적인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적인 것도 인간적인 것의 보편성에 들어가 있는 특수성을 갖는다. 그 특수성을 창조해내는 예술가들이 우리 자신이다. 그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적 공통성을 지닌 예술성이다. 핵심은 예술인 자신들의 인간적 보편성을 갖는 창조정신이다. 그런 한국적 특수성이 모여 세계적인 보편성을 창조해 나갈 것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죽음 기도 한국 전통음악 한국 화가들 한국 특유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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